The meaning of Home

집의 의미 ,  집에 대한 세가지 단상

올해 가을, 프라하에서 열리는 국제건축전시(Architecture Week Prague 2018)에 초대건축가로 참여하게 되면서, 프로그램 디렉터로부터 유네스코와 함께 진행하는 어린이 건축학교를 한국에서 진행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건축학교의 실무진들과 어린이 눈높이에 맞는 건축 드로잉 커리큘럼에 대해 논의하면서 가장 기본이 되었던 공감대는, 우리나라 아이들 대부분이 평면적으로 규격화된 아파트 이상의 건축을 잘 알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대한민국 국민의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 살고 있는 아파트공화국에서, 집의 의미는 아마도 환금성과 수익성, 그리고 입지성과 편의성 등 우리가 집에 대해 떠올릴 수 있는 수많은 생각들이 모두 스쳐 지나간 후에야 희미하게나마 떠올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기억에서 기념으로

건축주와의 만남은 언제나 즐겁다. 대부분의 건축주들은 첫 미팅에서 집을 지을 땅과 주변 환경, 필요한 방의 개수와 거실의 크기부터 이야기하지만, 우리는 그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오래된 이야기가 궁금하다. 언제 어느 동네에서 태어나 어떤 직업을 갖고 누구와 살아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그들이 편안함을 느끼는 공간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집은 정주성을 전제로 하며, 사는 이들의 과거를 기념하는 곳이다. 한 사람 혹은 가족 구성원들의 몸에 밴 생활습관과 총체적인 삶의 기억들을 존중할 때, 비로소 그들을 위한 진정성 있는 집을 지어줄 수 있다고 믿는다. 유행에 따라, 혹은 가게주인이 바뀔 때마다 얼굴이 바뀌는 상업건축물들과는 달리 집은 동네의 기억을 만들고 나아가 도시의 기념물이 된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렌지빛 석양을 받으며 따뜻하게 맞이해주는 이웃집들에 위안을 느끼고, 칠흑같은 밤에도 환하게 밝혀진 수많은 창들을 바라보며 마음 편히 산책을 한다. 집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가족중심의 사적 공간임에도, 동시에 수많은 이웃들에게는 소중한 일상의 배경이 되는 공공의 기념물인 것이다.

고유한 일상과 보편적인 공간

우리의 일상은 고유하다. 건축가라는 직업적 특성상 수많은 건축주들을 만나지만 똑 같은 삶은 없다. 건축가들은 건축주의 직업과 성향, 취미 등 그들 삶의 고유한 측면을 고려해 공간을 디자인한다. 그러다 보니 건축주의 삶이나 환경의 특수성에서 기인한 것으로 포장되어 과도하게 왜곡된 형태나 지나치게 선정적인 색채, 극단적으로 폐쇄적인 공간구조를 가진 집들을 여러 매체들을 통해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이러한 특이성들은 선정적인 키워드와 함께 건축가의 창의성으로 부풀려지기도 한다. 하지만, 내부의 기능을 위해 비틀린 형태는 수용하는 기능이 변할 때 장점을 잃을 것이다. 개인의 취향에 맞춘 알록달록한 벽면은 이웃에게는 시각적인 폭력일 지도 모른다.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외부로 창을 내지 않는 집들로만 가득한 동네를 걷는 느낌은 어떨까? 사실 집이라는 것은 사람의 인생과 비슷하여 삶의 주기에 따라 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길어진 평균수명에 비해 직업이나 취미는 더 이상 고정적인 의미를 갖지 못한다. 가족구성원의 변화에 따라 공간에 대한 요구들 또한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집을 지을 때, 지나치게 거주자의 특정한 측면에만 초점을 맞출 경우, 삶 전반에 걸쳐 보편적으로 충족해야 할 집의 가치를 잃을 수도 있는 것이다. 소소하지만 고유한 일상을 담을 수 있는 보편적인 공간으로 지은 집이 오래가지 않을까?

 

지속되는 삶과 지속가능한 건축

집이 지어지는 순간부터, 우리는 도시의 유목민 생활에서 벗어나 건축물의 수명만큼이나 긴 안목으로 삶을 바라보게 된다. 일반적으로 집을 짓는다는 것은 평생 열심히 일해 모은 돈으로 한 가족이 평안히 오랫동안 머물 수 있는 거처를 마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건축주들은 집을 지을 때, 가족 구성원의 변화나 경제사정에 따라 가변적으로 고쳐 쓸 수 있는 집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현실은, 많은 사람들이 가족이나 직장, 그리고 교육환경 등의 변화가 있을 때, 그에 맞는 새로운 지역의 적합한 환경으로 이사를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는 심지어 동네를 걸으며 늘 마주치던 주택이 사무실로, 그리고 다시 갤러리로 리모델링되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된다. 그렇다면 어떤 집이 지속가능한 가치를 가지는 것일까? 특정한 기능과 상황에만 적합한 형태보다는 보편적인 주거의 본질을 존중한 공간구조를 가지는 것이 좋다. 특정한 스타일만을 고수하는 건축가의 에고가 가득한 디자인보다는 쓰이는 재료의 물성과 구축방식에 의한 형태를 존중한 디자인이 적합할 것이다. 일시적으로 눈에 띄는 현란한 재료나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소모성 재료보다는 세월의 흐름과 함께 고색창연한 기품을 더해가는 재료가 바람직하다. 집은 건축주에게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보살핌의 장소이다. 그리고 몇 세대에 걸쳐 사람의 인생보다 더 오래 지속되며 수많은 삶의 기억과 의미들을 담아내며 지속가능한 도시환경을 만들어나가는 실천적 문화인 것이다.

From   Nº4 MAGAZINE BRIQ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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