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hinking Monument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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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 기념물의 현대적 숭배, 그 기원과 특질

The modern cult of monuments : its character and origin

현대건축 담론의 중심에 있었던 비평/탈-비평(critical/post-critical)의 이항대립적 논쟁도 이미 이십년 정도 지난 과거의 일이 되었고, 비평적 건축실무는 역사·이론 서적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시대적 상황이 된 듯하다. 비평의 검증 없이 소모적인 실험주의의 신화가 상투적인 표현주의로 전락하는 현상은 1920년대와 1970년대 건축·예술계의 흐름과 닮아있다. 변증법적 역사관의 한계를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차이만을 생성해내는 현대건축의 흐름에서 공허함을 느낀다.

탈-비평(post-critical)과 효과(affect)의 건축담론은 20세기 초의 거품경제와 신자유주의, 그리고 디지털 낙관주의와 그 맥락을 같이한다. 디지털 기술의 혁신에 힘입은 도구적 낙관주의(operative optimism)의 도구성(instrumentality)과 비평적 건축(critical architecture)의 자율성(autonomy)의 대립현상은 19세기 후반, 양식(style)의 기원에 대한 고트프리트 젬퍼(Gottfried Semper)의 유물론적(materialist) 명제와 예술사학자 알로이스 리글(Alois Riegl)의 예술의지(kunstwollen) 개념의 충돌에 대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리글은 저서『양식의 문제(Stilfragen)』에서 예술의 형태가 재료의 물성이나 가공기술로부터 기인한다는 기술유물론자(technical-materialist)들의 주장을 반박하며, 자연의 모사(mimesis)나 예술의 기능적 목적, 재료와 기술의 한계를 넘어 역사적으로 지속되는 ‘예술의지(Kunstwollen)’에 의해 양식의 발전이 이루어진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예술의 기원과 역사적 문법에 대한 리글의 이론은 기념물에 대한 고고학적 연구로 이어진다. 19세기 유럽에서는 존 러스킨(John Ruskin)의 보존운동과 외젠 비올레르뒤크(Eugène Viollet-le-Duc)의 양식적 통일에 대한 언급 이외에는 문화재의 정의와 의미, 그리고 가치평가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부족했다. 리글은 말년에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예술 및 역사 기념물보호와 연구를 위한 제국·왕립중앙위원회」문화행정관으로 활동하면서, 기념물의 가치와 인식체계를 다층위로 분석하고 체계적으로 논증함으로써 그 이론적 토대를 만들어냈다. 위원회에서 발표했던『오스트리아의 기념물보호의 법적정비를 위한 초안』의 제1장은 리글의 사후 14년이 지나서야 논문집『Gesammelte Aufsätze(1929)』에 수록되었지만, 기념물보호의 국제적 기준으로 채택되었던, 1964년「베니스 헌장」의 이론적 토대가 된 것으로 인정받는다. 1970년대 이후 리글의 이론에 대한 재평가와 함께 여러 언어로 번역되는데, 1981년에 이탈리아어판을 시작으로 1982년 영어판, 1984년에 프랑스어판, 2007년 일본어판 등의 출판이 이어졌다.

알로이스 리글은 짧은 인생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시대였던 19세기에 예술사를 독립적인 학문체계로 완성하고, 형식주의(formalism) 예술론을 체계적으로 발전시킨 예술사가로 인정받고 있다. 리글의 학문적 업적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원서를 구하기도 힘들며, 한국어로 번역된 저서는『기념물의 현대적 숭배, 그 기원과 특질』이 유일하다. 2013년 출판된 한국어판은 리글의 난해한 문장의 이해를 위해 다양한 언어의 번역본을 참고하여 번역되었다고 한다.

이 책은 크게 세 장으로 구성된다. 1장은 우선 기념물(Denkmal)의 개념적 이해를 위해 ‘의식적 기념물’과 ‘예술적·역사적 기념물’을 구분하고 논의의 초점을 후자에 맞춘다. ‘기념물(Denkmal)은 동사 Denken(생각하다)와 명사 Mal(표식)의 합성어이다. ‘생각하기 위한 표식’을 의미하는 Denkmal은 한국어에서 재산적 가치개념을 포함하는 ‘문화재’나 정치적으로 오용될 가능성이 있는 ‘기념비’와는 다르게 해석될 필요가 있다. 리글은 기념비와 비슷한 개념의 ‘의식적 기념물’은 태고의 문명에서부터 건립과 보호의 전통이 이어져 왔으므로 논의에서 제한하고, ‘예술적·역사적 기념물’의 의미와 가치를 분석함으로써 보호의 근거를 제공하려는 의도를 분명히 한다.

이어서 고대 트라야누스 황제의 기념주에서부터 16, 18세기 회화와 19세기의 역사철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구체적인 사례들에 대한 설명을 통해 기념물의 예술성과 역사성은 이분법적으로 분류할 수 없고 상대적인 개념이라는 점을 통찰력 있게 논증한다. 책은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유효한 것으로 간주되었던 ‘예술규범(Kunstkanon)’, 리글의 예술론의 핵심인 ‘예술의지(Kunstwollen)’, 기념물에 부여되는 가치의 시간적, 주관적, 실용적 ‘상대성’의 개념들을 통해 역사적 사례들에서 파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들을 독해한다.

2장은 기념물 숭배에서 기억의 가치에 대해 다루며 세부적으로 ‘경년의 가치(Alterswert)’, ‘역사적 가치’, ‘의식적 기억의 가치’로 분류하여 소개한다. 인간은 예술작품의 완결성을 추구하지만, 작품은 탄생과 동시에 경년(aging)현상에 의해 소멸을 향한다. 불가역적인 자연의 침식 앞에서 우리가 느끼는 ‘경년의 가치’는 시간의 위대함에 대한 숭고한 감정이다. ‘경년의 가치’는 역사적 가치로부터 발전한 혁신적인 개념이지만, 소멸에 이르는 과정에서 얻은 가치는 궁극적으로는 소멸될 수 밖에 없는 자기모순을 가진다.

3장은 ‘사용의 가치’, ‘예술적 가치’ 등 기념물 숭배에서의 현재적 가치를 논증한다. ‘사용의 가치’는 ‘경년의 가치’ 혹은 ‘역사적 가치’와 필연적으로 대립하며 기념물의 수복에 대한 많은 논란을 야기하게 된다. ‘예술적 가치’는 다시 예술성에 대한 ‘새로움의 가치’와 ‘상대적인 예술적 가치’로 분류되고, 시대성과 보편성의 잣대에 따라 달라지는 가치의 대립과 공존이 사례들을 통해 소개된다.

리글은 예술 양식에서의 우월성이나 절대적인 보편성을 인정하지 않았고, 연속된 역사의 흐름에서 양식의 발전과정을 고고학적으로 검증하려했다. 또한, 리글은 특정 가치만을 고집하여 다른 가치를 배제하고, 배제를 통하여 통일성을 추구하려는 사고의 독재를 비판하였다. 특정 가치의 정치적 오용과 비평의 소멸이 역설적으로 공존하는 동시대 건축·예술 문화에서, 집필된 지 100년도 지난 고전의 통찰력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 건축 (대한건축학회지), Vol. 62 No. 06

 
 

Rethinking Locality in Architec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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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가을, 미국 동부의 프린스턴 대학교에서는 미국 건축가 Frank Gehry에 의해 새로 완공될 Lewis Library를 둘러싼 격렬한 논쟁이 있었다. 논쟁의 발단은 Princeton Alumni Weekly 라는 동문회지에 실린 한 투고글이었는데, 오랜 역사와 전통으로 형성된 고유의 지역성을 가진 명문사학캠퍼스에 지어지는 정체불명의 못생긴(ugly) 건물에 대한 비판이었다. 여기서의 지역성은 자그마한 대학도시 스케일에서의 범주로, 한국에서 영국 건축가 Zaha Hadid의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지어질 때 논란이 되었던 지역성과는 미묘하게 다른 범주에 속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같다. 그것은 어느 지역의 종합적 정체성(collective identity)과 이질적인 디자인 논리와의 대립구조이다.

1980년대의 지리멸렬한 논쟁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지역성 논의를 다시 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 지역성을 옹호하는 진영에게는, 단순히 어떤 특정지역에 주변의 물리적 환경을 반영하여 지었다는 사실만으로 지역성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시각이 강하다. 건축가들이 개념적으로 디자인 프로세스에 적용하는 지역성과, 물리적이고 구체적인 디자인 결과물과의 감성적 괴리 또한 쉽게 풀리지 않는 이슈이다. 지역성 문제의 핵심은 논리적 프로세스에 있다기보다는 감성적이고 감각적인 체험에 있으며, 도시문화맥락속에서 시각적, 공간적으로 읽히거나 보여져야만 믿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여기 ‘사례들’에 소개된 건축가/이론가들은 비교적 젊은 건축가그룹으로 지역성에 대해 과감하고 진보적인 입장을 보여준다. 이들의 작업은 하나의 고정된 지역성에 얽매이지않고 프로젝트 각각의 고유한 성격과 환경조건에 따라 창의적으로 대응하는 공통점을 가진다. 이들에게 지역성은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삶의 현장에서 만들어가는 현재진행형의 프로젝트인 것이다.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지역성을 비판하거나 옹호하는 진영 모두 ‘다양성’이라는 논리를 기반으로 하지만 적용되는 지역의 스케일과 성격이 다르다는 점이다. 특정 지역의 고유한 정체성을 보존함으로써 각 지역들 간의 다양성을 유지하는 것은, 동시에 특정 지역내에서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배제하는 아이러니를 낳는다. 이는 시간의 축과 맞물려 기성건축가와 신진건축가의 미묘한 입장 차이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불경기가 지속되는 건축시장에서 기성건축가들은 대체로 외국 스타건축가들과 그들의 동시대 건축스타일의 무분별한 유입에 비판적이며, 신진건축가들은 생존을 위해 기성건축가들과 전략적으로 스타일의 차별화를 지향하며 글로벌 트렌드와 유사한 작업 성향을 보인다. 이들은 대체로 지역성 담론의 서로 다른 두 축을 형성하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지만, 지역성의 성격과 범위에 따라 정치적으로 미묘한 교집합을 형성하기도 한다.

지역성의 개념은 거대한 시간과 장소의 매트릭스에서 유동성을 가지고 끊임없이 진화하는 공간적 담론이다. 지역성의 텍스트는 저자(authorship)가 없고 저자의 개념이 중요하지도 않지만, 일정한 기간 동안 특정 공간을 부유하며 다양한 역사적 조건에 따라 일시적으로 일관성 있는 주장을 담는다. 지역성을 이해하는 과정은 논란의 여지없는 유일한 정의나 해답을 구하는 과정이 아니라 지역성을 구성하는 다양한 사회, 문화, 정치, 지리학적 논리에 대응하고 상황 논리에 맞추어 해석해 나가는 과정인 것이다.

『건축의 지역성을 다시 생각한다』 제3부 사례들 Intro, UP출판